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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길로 유명한 대흥사로 올라오는 산책길)

 

대흥사에 저녁 8시가 넘어서 도착했다. 언니 이야기로 대흥사 앞에 있는 여관도 유명하다고 했다. 마치 절의 연상선처럼 소박하게 옛 집으로 지어진 오래되어 보이는 여관이 바로 앞에 보였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있었는데 사람들이 방문을 열어 놓고 안주와 술을 하는 모습이 보였다. 언뜻 보아도 방이 그다지 많아 보이지 않는데 아니다 다를까 다 찼다고 한다. 나중에 혹시나 거할 수도 있다 싶어 잠깐 둘러보니 깨끗한 것이 괜찮아 보였다. 이미 저녁 공양 시간이 지나 식사라도 할 수 있나 물어보니 식사도 끝났다고 한다.

 

우선 대흥사에 짐을 풀어 놓고 식사를 하기로 했다. 템플스테이하는 사람들과 함께 하는 저녁 예불이 아직 끝나지 않아 비를 피해 잠시 기다렸다. 미리 전화 드린 분이 계시지 않아 염려가 되었는데 행자님 다행히 방 하나를 내어 주신다. 기거하는 분들이 꽤 계신지 사람 온기가 여기저기 묻혀 있다. 잠시 후에 와서 몇 가지 설명을 해 주신다는 말씀에 저녁 식사를 아직 하지 않아 바깥을 우선 다녀오겠다고 하니 놀라시며 따라오라 하신다. 비 오는데 바깥까지 나가지 말고 여기서 식사하라며 공양소로 안내해 주신다. 밥의 온기가 식을 것이라 말씀해 주시는 따스한 마음에 고맙다 인사를 여러 번 올렸다. 정토회에서 그리고 미황사에서 발우 공양을 해 보았기에 자연스럽게 밥과 반찬을 덜고 앉았다. 배가 고파서이기도 했지만 사찰음식의 소박하면서도 진한 맛이 감동적이다. 미황사에서도 밥과 반찬이 무척 맛있어서 마음 속으로 감탄을 했었는데 대흥사의 맛도 더할 나위 없다. 먹던 그릇을 깨끗하게 씻어 마시고 고맙다 인사를 드리니 오렌지 2개를 건네 주신다.

 

대흥사는 새벽 예불이 3시 30분에 있다. 그래서 9시가 취침 시간이다. 식사를 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소근소근 이야기를 한 시간 정도 나누고 10시가 되어 잠에 들었다. 새벽 3시. 일어나 새벽 예불을 드리고 108배를 하였다. 맑은 목탁소리, 풍부하게 마음 속으로 울리는 스님의 목소리, 고요한 사찰의 공기. 절에 있으니 이 시간에 이렇게 맑은 정신으로 고요하게 깨어 있는 것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이렇게 이번 남도 여행의 세 번째 예불을 드리고 방에 돌아왔다. 하지만 아직 시간이 한참 이르다. 씻고 앉았는데도 아직 밖이 어둡고 아침 공양 시간까지 1시간 넘게 남았다.

 

아침 공양을 하기 전에 창문을 열고서 깜짝 놀랐다. 어제 비가 오고 어두워 보지 못했던 주변 풍경이 눈에 들어온 것이다. 우리가 잠을 잔 곳에서 창문을 열어 보여지는 풍경이 너무 아름다워 한참을 바라보았다. 어제 제법 비가 온 뒤라 나무 잎사귀에 매달린 물방울하며 거미 줄도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사진으로는 다 표현할 수 없어 아쉬워요. 이것도 언니가 찍은 사진이랍니다.)

 

 

아침 공양, 찬찬히 앉아 주위를 둘러보고 공양을 시작했다. 발우공양은 사찰에서 스님들이 하는 식사법을 말한다. 밥 먹는 것을 공양이라고 표현하는 이유는 밥을 먹는 것이 단순히 배를 불리는 행위가 아니라 수행의 하나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법공양(法供養)이라고도 한다. 공양할 때는 소란스럽지 않게 자기 자신에게 주의를 기울이며 고마운 마음으로 먹는다. 음식에 담겨진 모든 것, 자연과 사람들의 노고에 감사를 드리고 깨어 있는 사람으로 살 것을 서원하는 것이다. 그리고 잘 알려진 바와 같이 다 먹은 뒤에는 자기가 먹은 그릇에 물을 부어 깨끗하게 씻은 뒤 그 씻은 물까지 마셔 깨끗한 그릇으로 공양을 끝낸다.

 

공양 후, 가볍게 아침 산책을 했다. 대흥사로 올라오는 길이 아름다워 유명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오늘 아침 보니 어제 저녁 차를 몰고 올라왔던 길이었다. 어제 저녁 어두운 중에도 길이 참 좋다고 했었는데 말이다. 대흥사 주변에는 추천하는 곳들이 여러 곳 된다고 한다. 언니와 나는 아침 내내 등산하여 진불암과 일지암을 둘러보고 내려왔는데 기대하지 않았던 경험도 함께 했다. 일지암을 가려고 길을 들었는데 방향을 달리 잡아 우리는 산길도 걷고 진불암에서 일지암까지 길 아닌 길을 찾아 내려왔다. 그렇게 걷게 된 산 길은 전 날 온 비로 운치가 있었다. 앞에 걸어 가는 언니의 뒷모습을 보며 내 뒷모습도 저렇게 운치가 있어 보이겠구나 싶었다. 진불암에서는 길을 물어오는 우리에게 길을 알려주시며 스님이 잠깐 기다리라고 하시더니 팥만주를 건네주셨다. 진불암에서 일지암까지 버려져 있는 과자 봉지 등을 주워가며 길 아닌 길을 헤쳐 나가는 것도 또 다른 즐거움을 주었다. 점심 전에 출발하려는 계획을 바꿔 일지암에서 내려오자마자 점심 공양을 하고 대흥사를 출발했다.

 

 

(다리 왼쪽에 있는 붉은 건물이 제가 잠을 잔 곳이랍니다. 같이 간 언니가 찍은 사진이예요)

 

 

나는 기도 드리러 온 불교 신자인 언니를 따라 묵은 터라 템플 스테이 프로그램에 참여한 것은 아니다. 나의 템플 스테이는 말 그대로 '절에서 기도하고 자고 공양한' 뜻이 되는 셈이다.

대흥사에서는 템플 스테이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몇 분들을 보았는데 템플 스테이 하시는 분들은 절에서 나누어 주는 옷을 입고 있었다. 대흥사의 템플 스테이 하시는 분들은 별도로 공양을 하시는 지 공양 시간에 볼 수 없었다.

 

템플 스테이 하려 오셔서 프로그램에 참석하지 않으시고 휴식만 하고 가시는 분들도 있다고 한다. 불교 신자가 아니라면 예불을 드리는 일이 마음 편하게 여겨지지 않을 지도 모르겠다. 나도 불교 신자는 아니다. 하지만 108배를 드리고 좌선 명상을 한다. 예불도 30분이 넘지 않아 그다지 지겹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원래 예불은 그보다 더 길다고 한다.) 스님들만 무언가를 한다면 지겨울 수 있겠지만 작은 책자들이 잘 마련되어 있어 같이 참여할 수 있었던 점도 좋았다. 가만히 앉아 있기 힘겨울 때는 절을 해도 괜찮았다. 꼭 어떻게 해야 한다는 법칙과 제약 사항은 없었다. 부처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고 내 마음을 들여다보는 것, 그 마음을 내는 것뿐이다.

 

템플 스테이는 치유와 휴식을 위해 만들어진 것 같다. 꼭 어떤 목적이나 의도를 가지기 보다 내맡긴다, 놓는다는 기분으로 참여하면 좋을 것 같다. 그러면 판단하는 마음보다는 부드러운 마음으로 마음과 눈이 더 맑아지고 커질 것 같다. '내게 보이는 대로 보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보는' 마음이 무엇인지 조금이라도 깨닫는 시간이 될 수 있으면 좋겠다.

 

 

(고즈넉한 고요함, 두 손을 단전에 모으고 천천히 걷는 것이 전혀 어색하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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