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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스쳐 지나가듯 세계의 뉴스를 소개하는 화면에서 영국의 타임달러, 타임뱅크가 잠깐 언급되었다. 영국은 전체인구의 50%가 자원봉사를 하고 있고 자원봉사 시스템에 타임달러와 타임뱅크를 도입하고 있다고 했다. 1시간이 1달러이고 타임뱅크에서 타임달러가 거래되고 있다고 소개하면서 아이를 돌보거나 컴퓨터를 배우거나 공연을 보기 위해 타임달러를 주고 받는 화면을 보여주었다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그 때 나는 3가지 관점에서 타임달러가 의미 있다는 생각을 했고 타임달러를 만들어 낸 에드가 칸의 이 책을 읽게 되었다.

타임달러가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


하나는 할 수 있는 일들이 매우 다양하고 폭넓다는 것이다. 누군가가 필요로 하는 일이라면 모든 일들이 그 일에 해당될 수 있다. 타임뱅크는 이 일들을 어떻게 목록화하고 있고 사람들에게 어떻게 제시하고 있는지 궁금해서 타임뱅크 홈페이지에 접속했다. 타임뱅크 홈페이지에서 Timedollar_DIY Toolkit Time Banks Skills Assessment를 다운받아 열어 보았다. 타임달러가 무엇이며 어떻게 이용하는 것인지, 이 모든 것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이해하기 쉽게 소개한 글 다음에 give receive를 체크할 수 있게 되어 있었다. 잔디깎기, 운전해주기, 장보기 등이 포함된 일 목록은 나를 미소 짓게 했다. 그림을 이용해 아이라도 알아볼 수 있게 일목요연하게 잘 만들어졌기 때문이기도 하고 그 일 목록을 보니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이 아주 많을 거라는 기대 때문이었다.

 


 

Time Banks Skills Assessment에는 이런 문구가 적혀 있었다. 

 

Many people don’t realize how many skills they actually have. Most of us take what we can do for granted and don’t realize that something we do every day—driving, cooking, sewing, taking care of children and housecleaning, for example—could make a big difference in someone else’s life.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이 실제로 얼마나 많은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 우리 대부분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기 때문에 운전하고 요리하고 바느질하고 아이를 돌보고 집을 청소하는 것과 같은 우리가 매일 하는 일이 누군가에게 큰 변화를 가져다 줄 수 있는 것임을 깨닫지 못한다. (저의 번역)


 

종이를 한 장 들고 내가 줄 수 있는 일들을 생각나는 대로 모두 쭉 적어 보았다. 다 적고 보니 내가 평소에 생각했던 것보다 휠씬 많은 목록들이 적혀 있었다. 이 일들을 receive 받고자 하는 사람들과 원활한 정보 공유가 이루어지면 정말 멋지겠다는 생각을 했다.

 

또 하나, 주는 사람 따로, 받는 사람 따로 구분되어 있지 않다. 사람은 모두 어떤 필요로 가지고있고 어떤 것이든 할 수 있는 일이 있다. 이는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시장경제에서 정의 내리는 제한된 돈 혹은 직장을 의미하는 노동의 의미를 넘어서고 있기에 가능하다. 가정에서, 사회에서 필요로 하는 모든 일,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모든 일, 사회를 구축하고 조화롭게 만들어 가는 모든 일을 노동으로 인정한다. 다시 말해 모든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

 

에드가 칸이 코프러덕션(Co-production)에 대해 계속 이야기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타임달러는 단지 이것을 가능하게 하는 하나의 유용한 도구이다. 본질적 핵심은 타임달러와 타임뱅크가 아니라 코프러덕션이다. 그리고 코프러덕션이 의미하는 것이 바로 쓸모없는 사람은 없다’는 것이다.

 

에드가 칸은 이것을 반 채운 컵에 비유한다. 반이나 찼다고 할 것인지, 반이나 비웠다고 할 것인지. 사람을 문제 있는, 해결해야 하는 존재로 바라보지 않는다. 도움이 필요한 동시에 무언가 할 수 있고 줄 수 있는 존재로 바라본다. 컵이 반이나 찼다고 보는 것이다. 이로써 이 시스템에 give receive을 체크할 수 있는 사람은 우리 모두가 된다.

 

마지막으로, 주고 받는 것을 네트워크로 만든 점이다. 에드가 칸은 이것을 닫힌 고리가 아니라 열린 고리라고 이야기한다.

예전에 인터넷에서 몇 번이나 시도를 했지만 실패한 비즈니스 모델이 있다. 사람들의 재능을 주고 받는 사이트이다. 나는 너에게 영어를 배우고 너는 나에게 요리를 배우는 식이다. 그런데 이 사이트는 3가지 과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매번 실패했다. 첫째 형평성이다. 영어 능력과 요리 능력을 형평성 있게 볼 수 있는가. 객관적으로 판단되어 있지 않다면 주관적으로 판단할 수 밖에 없고 거래에 장벽이 된다. 둘째 내가 받고 싶은 것과 네가 줄 수 있는 것이 맞아떨어져야 한다. 나는 요리가 아니라 일어를 배우고 싶고, 일어를 가르칠 수 있는 사람은 운전을 배우고 싶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셋째 영어를 배우고자 한다면 영어를 가르쳐주는 사람의 능력을 어느 정도 신뢰할 수 있는가?

 

타임뱅크는 두 사람이 맞아떨어져야 하는 닫힌 고리를 타임달러로 해결했다. 그래서 주는 사람에게 받아야 하는 한계에서 벗어나 give receive가 자유롭게 교류될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었다. 그리고 일에 무게를 달지 않았다. 시장경제의 논리를 떠나 가정과 사회를 같이 만들어가는 데 필요한 모든 일을 시간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보고 있다. 1시간이 1달러가 된다. 또 내가 할 수 있는 정도의 일을 하면 된다. 나의 영어 능력이 초등학생과 대화할 수 있는 수준이라면 그 일을 하면 된다. 열린 고리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4가지 핵심 가치

 

에드가 칸이 타임달러라는 새로운 거래 화폐를 생각하게 된 것은 개인적인 경험에서 시작된다. 그는 병원에 누워 아무것도 할 것이 없는 수혜자의 입장이 되었을 때 무기력함을 느끼며 내가 할 수 있는 게 무엇인가를 고민했다. 그리고 이것은 자신에게만 국한된 질문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그는 돈이 아니라 할 수 있는 것을 교환할 수 있는 새로운 도구를 필요로 했고 1시간=1달러가 되는 타임달러를 생각하게 되었다.

 

에드가 칸은 이 책에서 돈과 시장경제가 중심이 되어 있는 현재 사회와 주는 자와 받는 자가 확실하게 구분되어 있는 자원봉사 사회를 향해 4가지 중요한 의식의 전환을 요구한다. 이는 코프덕션의 4가지 핵심 가치이기도 하다.

 

첫째, 더 이상 쓸모 없는 사람은 없다. 모든 사람은 나누고 줄 것이 있다.

둘째, 일을 다시 정의한다. 가정과 사회를 구축하기 위해 필요한 모든 일, 사회적으로 유용한 모든 기여가 일이다. 모든 사람이 기여하는 일의 1시간은 모두 동일한 가치를 지닌다.

셋째, 더 이상 일방적인 자선과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의존은 끝낸다. 우리는 서로가 필요하다. 돕고 도움을 받는 것이-물론 타임달러를 기부할 수도 있다- 하나의 네트워크로 순환된다. 이는 도움을 받는 자, 도움을 주는 자의 경계를 허물어 도움을 받는 자에게 자기 존중감을 주고 공통의 목적을 위한 협력자가 되게 한다.

넷째, 사회적 자본은 더 이상 개념이 아니다. 우리는 타임달러라는 유용한 도구를 활용함으로써 실제로 서로 돕고 나누며 함께 참여하는 공동체라는 사회적 자본을 구축하고 있다.

 

 

 


2002
년부터 타임달러를 시행하고 있고 이 책을 번역한 구미요한센터의 구미사랑고리은행 홈페이지에는 사랑고리(타임달러)가 어떻게 이루어지는 것인지 보여주는 멋진 사례가 소개되어 있었다.

 

김할머니는 병원에 가야할 것 같으면 사랑고리은행에 전화를 건다. 언제 어느 병원에 갈 것인지 말을 해 주면 은행에서는 봉사자를 찾는다. 사랑고리회원 중에서 자동차가 있고 시간을 내서 김할머니를 병원에 모시고 다녀 올 박아줌마를 찾았다.

 

박아줌마는 김할머니의 집으로 가서 모시고는 병원에 함께 간다. 병원에서 접수하는 일부터 의사의 진료까지 함께 다니며 노인을 돌보아 주었다. 이제 김할머니는 병원에 다니는 일이 기쁜 일이 되었다. 김할머니는 이제 반나절만에 병원을 편안히 다녀올 수 있게 되었고, 마음속에 큰 감사와 사랑을 간직하게 되었다. 박아줌마도 반나절 일한 만큼의 [고리]와 사랑을 받았다. 박아줌마는 여기서 번 [고리]를 꼭 필요한 일에 사용을 할 것이다.


김할머니는 감사하는 마음에서 은혜를 갚고 싶었다. 그래서 자기가 할 수 있는 것을 찾아보았다. 집에는 혼자서 먹기에는 너무 많은 된장이 있는 것이 생각났다. 그래서 사랑고리은행에 전화를 했다.

"
우리 집에 잘 익은 된장이 있는데 회원들과 나누어 먹고 싶어요. 맛이 아주 좋아요
".

사랑고리은행의 간사는 이 된장이 필요한 회원을 찾기 위해서 게시판에 공고를 했다. 이 된장은 회원에게 5[고리]에 팔렸다. 김할머니는 이 5고리로 보건소를 다녀오고 사랑고리 회원의 미장원에 가서 파마를 했다.


 

 

 

어떻게 활용될 수 있을까?

 

책을 읽으면서 몇 가지 해답을 찾고 싶은 의문이 생겼다. 책에 대한 의문이라기 보다는 타임달러가 영국과 다른 나라에서 성공적인 변화를 가져오는 것처럼 한국에서도 좀 더 적극적으로 넓게 활용될 수 있을까? 라는 질문에 뒤따른 의문이다.

 

타임달러는 사람을 자산으로 하기 때문에 새로운 정보 체계를 필요로 한다. 타임달러는 이웃이 할 수 있는 것과 필요로 하는 것에 대한 정보 체계를 갖추게 되고 생생한 거래에 의해 끊임없이 최신이 정보를 담아내는 역동적인 정보 체계가 필요하다고 저자는 말한다. 나도 이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바꿔 말해 Timebanks.org에서 제공하는 것과 같은 타임달러 네트워크를 실시간으로 반영하는 소프트웨어를 제공하는 사이트가 요구된다. 그런데 현재 한국에서는 필요로 하는 곳과 필요로 하는 일, 기여하고 싶은 사람과 기여하고 싶은 일이 제대로 소통되고 있지 않는 것 같다. 이것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으로 이 타임뱅크와 역동적 정보 체계가 도움이 되지 않을까?

 

그리고 각 단체들이 개별적으로 이러한 역동적 시스템을 갖춘 사이트를 제작하고 관리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이 시스템을 시작하는 데 있어 사이트 제작과 관리 자체가 걸림돌이 될 수 있다. , 한국 전체에 누가 어떤 일을 도움을 줄 수 있고 도움을 받기를 원하는 지 사이트 한 곳에서 확인할 수 있고 동일한 프로그램을 사용한다면 한국 전체의 사회적 자본이라는 측면에서 더 고무적이지 않을까? 지역 공동체 단위로 시행되어야만 하는 특별한 이유가 무엇일까? 지역이라는 틀을 깨면 우리가 발견하지 못한 장점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운영이라는 면에서도 좀 더 효과적이지 않을까? 푸드뱅크, 문화 단체, 기업들과의 연계도 더 활발해지지 않을까?

 

또 하나의 의문은 한국에서의 반응은 어느 정도일까 하는 것이다. 타임뱅크가 처음 일어났고 현재 매우 성공적으로 발전하여 100여 개의 타임뱅크가 운영되고 있는 영국은 전체 인구의 50%가 자원봉사 활동을 하고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한국은? 타임뱅크 사이트가 오픈 되었을 때 얼마나 많은 사람이 회원 가입을 하고 타임달러를 벌어들이는 일, 즉 도움을 주고 기여하는 일에 참여할까? 그리고 사회적 자본, 서로 기여하는 사회 공동체 구축이라는 취지를 높이기 위해 전문가 집단과 기업체들의 참여도 필요하다. 그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기 위해서는 지금 눈에 보이는 이익보다 사회에 기여하고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측면을 분명하게 인식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어느 정도까지 의식이 성장해 있는 것일까?

 

에드가 칸은 돈이 인간이 가지고 있는 어느 한 면을 부각시키고 강화시키는 것이라면, 타임달러는 인간이 가지고 있는 또 다른 면을 인식하고 강화시키는 것이라고 말한다. 내가 가진 이 두 번째 의문은 사업의 관점에서 보면 고객이 있는가, 고객에게 의미가 있는가라는 질문과 동일하다. 현재 한국에서 대안 공동체에 대한 관심과 타임달러를 활용하는 움직임이 점차 활발해지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에드가 칸의 수년 간의 경험은 앞의 질문에 대해 '고객은 있고 고객에게 의미가 있다'고 대답한다. 남은 것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그 마음을 어떻게 더 잘 이끌어내고 어떻게 더 편안하고 원활하게 교류할 수 있도록 할 것인가' 이다.

 

 



타임뱅크는 단순히 자원봉사 시스템이 아니다. 타임달러는 서로 돕고 같이 만들어 가는 교류이며사회적 네트워크를 연결하는 고리이다. 이러한 교류와 네트워크는 같이 돕고 같이 만들어가는 공동체라는 사회적 자본을 구축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내내 떠오른 것은 새롭게 구축된 공동체 모습이다. 쓸모 없는 사람은 없는, 모든 사람이 자산이 되는, 서로를 필요로 하고, 함께 살아갈 사회를 만들기 위해 모든 사람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로서 기여하는, 함께 만들어 가는 그런 공동체. 돈으로 일을 정의하지 않는, 살고 싶은 공동체를 만들어 가는 모든 일이 일로서 가치를 인정받고 존중 받는 그런 공동체.

 

이 책은 에드가 칸이 타임달러에 대해 쓴 유일하게 번역된 책이다. 1부를 읽을 때는 번역이 어색해서 글이 쉽사리 이해되지 않아 다소 애를 먹었다. 하지만 타임달러와 타임뱅크가 어떻게 활용되고 성과를 거두었는지에 대한 사례들은 고무적이었고 감동적이었다. 코프러덕션의 4가지 핵심 가치를 이야기하는 제 3부는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었다.

나는 아직 읽지 않았지만 데이비드 보일의 책 <행복한 돈 만들기>에서 타임달러와 타임뱅크를 소개하고 있으니 이를 참고하는 것도 좋을 듯 하다.

 

 

<책 소개> 

이제 쓸모 없는 사람은 없다 (No More Throw-Away People, The Co-Production Imperative)

에드가 칸(Edgar Cahn) / 구미요한센터 / 2002

 

<저자 소개 - 에드가 칸(Edgar Cahn) >

 

예일 법대를 졸업한 후, 변호사로서 미국 내의 여러 사회프로그램에 참여했다. 전국 법률서비스 공동 설립자이자 안디옥 법대의 공동 설립자이다. 2004년 현재 UDC David A. Clarke School of Law 교수로 활동하고 있으며, 워싱턴에서 타임달러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타임달러>, <기아의 미국> 등이 있다.

 

타임뱅크 : www.timebank.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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