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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1장을 읽으면서 저자 댄 로암과 비슷한 나의 경험이 생각이 났다.

 

 

냅킨에 그린 한 장의 그림

 

몇 년 전 컨설팅 회사에 입사하기 전에 나는 카페에 부사장님과 마주하고 앉아 있었다. 부사장님은 옆에 꽂혀 있는 냅킨을 꺼내더니 탁자 위에 얇게 편 뒤 펜으로 무언가를 그리기 시작했다. 나는 호기심으로 펜으로 그려지는 그림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부사장님이 무슨 그림을 그려갈 지, 어떤 이야기를 할 지 귀를 기울였다.

"사람은 자신이 주로 어떤 것에 동기 부여되는 지 알면 무척 도움이 돼. 제이는 어떤 스타일인 거 같은지 한 번 같이 살펴볼까? 내적 동기에는 4가지가 있는데 의미, 성과, 역량, 선택이 있어."

 

그는 냅킨에 2X2 매트릭스를 그리고 그 안에 글자를 적고 포인트를 주고 선을 그리면서 말을 이어갔다. "의미 타입은 일을 할 때 일의 가치를 느끼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 중요한 일을 한다, 가치 있는 일을 한다 느끼는 것이 중요하지. 성과는 ~ (중략) 내 경우에는 ~ (중략) 제이는 어떤 것 같아?" 나는 냅킨을 유심히 들여다보면서 내 생각을 말했고 그렇게 우리는 냅킨을 앞에 두고 동기부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내가 정식 출근하기 전에 이렇게 우리는 서로를 이해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런데 그 도형을 그리면서 생각하고 대화했던 과정이 동영상처럼 그 이후에도 내 뇌리에 또렷이 남아, 우리가 나눈 이야기를 되새기게 만들었다. 그림은 나를 집중하게 했고 좀 더 역동적으로 사고할 수 있게 했으며 보다 명확하고 입체적으로 기억할 수 있게 했다.

 

그 경험으로 나는 그림으로 보여주고 이야기하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깊은 인상을 받았다. 그리고 앞으로 회사에서 배우게 될 일을 두근거리며 기대했다. 나중에 알게 된 것이지만 그가 2X2 매트릭스에 그려 보여준 4가지 내적 동기는 케네스 토마스의 <열정과 몰입의 방법>의 내용이었다. 부사장님의 냅킨 덕분에 나는 그 책을 읽기도 전에 4가지 내적 동기를 또렷하고 명확하게 기억하고 이해할 수 있었다.

 

 

위 그림은 저자가 우연찮은 기회로 급하게 다른 사람 대신 강연을 하게 되어 담당 실무자에게 자신이 앞으로 하게 될 강연에 대해 간략하게 이야기하면서 냅킨에 그린 그림이다. 저자는 이 날 프레젠테이션 문서 없이 그림을 직접 그리면서 강연을 하게 되는데 이 경험은 특별한 경험이 되었다. 이 경험이 이 책이 탄생하게 된 배경이 된 셈이다. 그 이후 저자는 '그림을 이용한 문제 해결 방식'에 관한 모든 자료를 수집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몇 가지 의미 있는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었고 이를 비즈니스 컨설팅과 세일즈에 직접 적용하기 시작했다. 실제로 저자는 '시각적 사고'를 이용해서 구글, 이베이, 피츠커피앤티, 웰스파고 은행 등의 기업을 도왔다.

 

 

아이디어를 시각화하는 방법

 

이 책의 장점은 무엇보다도,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틀을 잘 활용할 수 있도록 정리되어 있다는 점이다. 저자가 제시하고 있는 사고 방식과 틀은 크게 4가지로 나누어 지는 데 간략하게 소개한다. 저자는 이들을 설명하기 위해 몇 가지 구체적인 사례와 예시를 들어 전체 사고 과정을 보여주려고 노력한다.

 

  • 4단계 시각적 사고: 살펴보기 – 인식하기 – 상상하기 – 제시하기의 4단계 프로세스는 순서대로 이어지지만 반드시 일직선으로 이어질 필요는 없다. 일련의 고리처럼 사고하는 것이 적절하다. 즉 필요하다면 상상하기에서 살펴보기로 순환할 수 있다. 살펴보기가 첫 과정인 것은 전체를 펼쳐보고 이해하기 위해서이다. 인식하기는 중요한 것을 가려내고 어떤 의미 있는 패턴을 찾아내 그룹핑(grouping)하는 과정이다. 그리고 상상하기를 통해 살펴보고 인식한 것을 재해석하고 자신만의 그림을 만든다. 제시하기에는 핵심이 담겨 있어야 한다. '어떻게'와 '왜'가 담겨 있어야 잘 정리된 제시하기라고 할 수 있다. 이 4단계 사고는 '사고하기' 뿐만 아니라 '제시하기'의 기본 틀이 된다.

     

  • (인식하기, 제시하기의) 여섯 가지 인식: 인식한다는 것은 문제를 정확히 알아본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를 위해 '누가/무엇을, 얼마나 많이, 어디서, 언제, 어떻게, 왜' 의 6가지 관점에서 문제를 파악한다. 책을 읽어보면 육하원칙은 '알고 있는 방법인데..' 하며 대수롭지 않게 넘어갈 부분이 아니다. 사고 능력에 따라 많은 것을 밝혀낼 수 있다. 초콜릿 교육 프로세스를 사례로 들고 있어 재미있게 읽었다.

 

  • (상상하기의) 아이디어를 제시하는 5가지 방법 SQVID: 질문을 하나 하겠다. 사과를 표현하는 그림을 생각나는 대로 모두 그려보라. 몇 가지나 그릴 수 있는가? 저자는 11가지 방법을 보여주고 있다. 개인적으로 이 부분을 아주 재미있게 읽었다. 사실 이 부분이 꽤나 까다로운데 사과를 여러 가지 측면에서 생각해 보는 것은 즐겁고 유익한 방법이 될 것 같다. 다른 과일과 비교하여 그려진 사과이든(comparison), 다 먹고 꼭지만 남은 모습이든(Delta), 애플파이 그림이든(execution), 가장 중요한 것은 ''상대방에게' 가장 효과적으로 제시할 방법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는 것이다.

 

  • (제시하기의) 여섯 가지 시각적 사고 틀: 육하원칙 각각을 가장 잘 나타내는 제시 틀을 알려주고 있다. 예를 들어 시간에 관한 '언제'는 타임라인이 대표 틀이 된다. 저자는 수많은 도형 속에서 길을 잃지 말고 '여섯 가지 틀 가운데 어느 틀을 이용하면 이 문제를 풀 수 있을까?' 를 생각하라고 말한다. 가장 곤란한 문제인 '각각의 틀마다 그림을 어디서부터 시작해 나가야 하는지'에 대한 출발점도 알려주고 있다.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위 내용들이 시각적 사고로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살펴 보는 것은 흥미롭다. 책 206쪽에 저자는 책에 담고 있는 사고 틀과 방법 틀을 일목요연하게 한 장의 그림 표로 정리해 놓고 있는데 어떤 과정을 통해 이 최종 표가 나왔는지 알게 된다면 이 표를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겠다 생각했다.

 

 

 

눈과 손, 마음의 눈을 함께 쓰기

 

이 책을 읽으면서 '여기에서 여기까지'의 사고 과정이 생략된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었다. 예를 들면, 많은 자료들 속에서 관점을 잡고 그룹핑 하는 과정 없이 그룹핑이 이루어졌다고 가정된 상태로 건너뛰는 것이다. 그 과정을 담게 되면 내용이 논리적 사고력까지 이어져야 하는데 그러면 책 내용이 무척 방대해 질 것이고 아이디어를 시각화 한다는 책 주제에서 벗어나는 감이 있다.

 

이 책의 유용성은 눈으로 생각하는 방법을 배우는 데에 있다. 내 경험에 비추어 볼 때 그림을 그리면서 사고하는 훈련은 효과적이고 유용했다.

 

처음에 내가 컨설턴트가 되었을 때 날마다 한 일이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흩어진 자료들을 그룹핑하고 그 안에서 의미 있는 관점을 찾아내는 것이었고 또 하나는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가장 명확하고 이해하기 쉽게 전달할 수 있는 틀을 찾아내는 것이었다. 많고 많은 틀 가운데 가장 적합한 것을 찾고 그것을 가장 명확하고 알기 쉽게 표현해 내는 일은 끝없이 반복되는 과정이었다. 이 때 많이 한 일이 A4 용지에 로직트리(logic tree), 피라미드, 매트릭스 등을 그려 놓고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여러 예시를 반복해 보면서 분석하고, 그려낸 것을 사수에게 검사를 받고 다시 도전하는 것이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좀 더 일찍 출간되었더라면 좋았겠다고 생각했다.

 

"시각적 사고는 눈으로 생각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다. 그림을 이용해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필요한 도구는 세 가지뿐이다. 바로 눈과 마음의 눈 그리고 눈과 손의 협력이 필요할 뿐이다." (책, 34~35쪽)

 

그리고 이 책의 가장 큰 목적은 "그림을 통해 메시지를 더욱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이해시키며 무엇보다도 시각적으로 기억시키는 것'에 있다.

 

 

비즈니스는 보여주고 설득하는 것 – 천 마디 말을 끌어내는 훌륭한 그림

 

이 책의 마지막 장은 시각적 사고를 활용해 의사소통하고 제안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강의를 하던 프레젠테이션을 하든 세일즈를 하든 상대방에게 내가 생각하는 것을 명확하고 설득력 있게 전달하는 것은 늘 도전적인 일이다. 파워포인트를 활용한 프레젠테이션을 하면서 늘 느끼는 것은 문서를 잘 만드는 것과 잘 전달하는 것은 서로 다른 문제라는 것이다. 문서를 잘 만들어 놓고도 제대로 설명해 내는 것이 쉽지 않다. 그냥 보여지는 대로 쭉 읽어서도 안 되고 듣는 사람에게 설득력 있게 핵심을 잘 전달해야 한다. 흥미도 유발해야 하고 듣는 사람들이 스스로 질문하고 싶게도 만들어야 한다. 어떻게 하면 듣는 사람의 생각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따라가면서 손에 잡힐 듯이 보여주면서 스스로 설득될 수 있도록 할 수 있을까? 저자는 살펴보기-인식하기-상상하기-제시하기 방법을 제안하고 있다. 저자가 선택한 예시는 '중역에게 아이디어를 제시하는 것'이다. 책에서는 프레젠테이션 화면 없이 화이트보드에 그림을 그리는 방법을 쓰고 있다. 예전 사부가 이 방법을 종종 쓰곤 했는데 듣는 사람의 입장이었을 때 무척 흥미롭고 매력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 방법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충분한 사고 과정이 이루어져야 한다. 한 장의 그림으로 표현할 수 있어야 하니까 말이다.

 

하지만 살펴보기-인식하기-상상하기-제시하기의 방식은 사람의 사고 흐름을 자연스럽게 따르고 흥미도 불러일으킬 수 있는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파워포인트 프레젠테이션 방식에서도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한다.

 

"우리가 통찰력을 고취시키는 그림을 제시하는 것은 그 그림이 천 마디의 말을 생략해 주기 때문이 아니라 중대한 차이를 만들어 낼 천 마디의 말을 이끌어 내기 때문이다." (책, 354쪽)

 

 

사실 사고력은 책을 한 권 혹은 몇 권 읽는다고 갑자기 놀라운 능력을 발휘하게 되는 영역은 아니다. 무엇보다도 훈련과 연습이 필요하다. 또 통찰력을 얻기 위해서 많이 읽고 많이 쓰고 많이 경험하고 많이 성찰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손과 마음의 눈, 그리고 종이와 펜만 있으면 어디에서든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는 그림이라는 좋은 도구를 알게 되었으니 내가 할 일만 남은 셈이다. 바로 여러 경우에 다양하게 활용하고 응용해 보는 것이다. 실제로 이 책을 읽고 나서 회의 할 때 의도적으로 화이트보드에 그림과 도형을 유연하게 사용하려고 노력하고 있고 보다 직관적으로 전달된다는 것을 느낀다. 더불어 재미있다고 느끼는 것 같다.

 

 

 

 

같이 읽으면 좋은 책들

 

참고로, 그림을 그리며 사고하기에 대한 또 하나 도움이 될 책은 히사츠네 게이이치의 <잭 웰치를 움직인 세 개의 원>이다. 이 책은 비평도 많이 받았지만 쉽게 읽히고 도해 사고의 기본을 가볍게 시작하기에 좋다는 점에서 추천한다.

 

그리고 본 글 앞에서 '건너뛰는 것 같다고 이야기한 논리적 사고의 과정'에 대해 도움이 될 만한 책들을 소개하려고 한다. '맥킨지식 논리적 사고와 구성의 기술'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테루야 하나코, 오카다 케이코의 <로지컬 씽킹>은 논리적 사고의 핵심인 MECE, why so, so what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너무 많은 내용을 담으려 하지 않고 이 세 가지에 집중하고 있어서 좋았다. 바바라 민토의 <논리의 기술>은 피라미드 구조가 무엇인지 그리고 글쓰기, 생각하기, 문제 해결하기, 문서 구성하기 등 각 목적에 따라 어떻게 활용하는가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내 경험에 비추면 두 책을 함께 읽으면 시너지 효과가 있다.

 

 

생각을 Show하라 - 
댄 로암 지음, 정준희 옮김/21세기북스(북이십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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