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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문제를 하나 내 보겠습니다. <이혼의 수학 The Mathematics of Divorce >이라는 책을 펴낸 존 고트먼은 어떤 부부를 5분~15분 정도 살펴보면 이혼할 가능성을 95% 이상 알아맞힐 수 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과연 그게 어떻게 가능할까요? 한 번 상상해 볼까요? 지금 여러 부부를 관찰하고 있다고 가정해 볼께요. 그들이 말하고 행동할 때마다 어떤 감정이 표현되고 있는지 주의 깊게 관찰하는 중이라고요. 이혼의 신호, 즉 결혼의 적신호를 알려주는 결정적인 감정은 무엇일까요?


고트먼의 연구는 그것이 '경멸'이라는 것을 알아냈습니다. 고트먼에 의하면 "경멸은 혐오와 밀접한 관계가 있고, 혐오와 경멸은 누군가를 공동체로부터 완전히 거부하고 배제하는 행위로 연장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다시 말해, 어떤 커플이나 부부가 헤어질 지 아닐 지를 알아내기 위해서 시시콜콜 복잡한 과정들이 필요 없습니다. 가장 결정적이고 특별한 감정 신호인 '경멸'만 측정해 낼 수 있다면 말입니다.

 


이것이 바로 '블링크'라는 단어가 뜻하는 '2초 안에 일어나는 순간적인 판단'의 핵심 중 하나입니다. 그것은 '얇게 조각 내기'라고 불리는 것인데요, 어떤 상황과 행동에서 패턴을 읽어내는 무의식의 능력을 일컫습니다.


이 패턴은 이혼할 부부를 밝혀내는 것과 마찬가지로 고소당할 외과 의사도 쉽사리 찾아냅니다. 심리학자 낼리니 앰버디 팀은 외과의사의 목소리에서 우월감이 느껴질 경우, 그 의사는 고소당할 위험이 크다는 것을 알아냈습니다. 의료 소송 사건은 매우 복잡하고 난해한 문제로 생각되는데, 문제의 핵심을 밝혀 내면 결국 존중감의 문제임을 알게 됩니다.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바로 '논리를 넘어서는 무의식' 때문입니다.

 


그런데 의문이 하나 떠오르지 않나요? 인간의 무의식, 인간의 순간적인 판단에는 상당한 오류와 편견이 있다는 사실 말이죠!

결론적으로, 말콤 글레드웰이 이야기하고 싶어하고 우리도 가장 알고 싶어하는 블링크는 '진실을 통찰하는' 순간 판단입니다. 이를 위해서 우리는 블링크가 어떤 오류에 의해 잘 못 작동하는 지 알아야 합니다. 그럴수록 '진짜 순수한, 꿰뚫는' 순간 판단이 더 잘 발휘되기 때문이죠. 그렇기에 우리는 처음의 2초, '순수한' 2초를 신중하게 살펴야 합니다.

 


블링크의 오류는 '무의식적 편견'과 '복잡하고 너무 많은 정보'에 의해서 발생하기 쉽습니다.

 

복잡하고 너무 많은 정보의 해결 방안은 '패턴'입니다. 헤어질 커플과 소송 당할 의사를 알아내는 데 있어 몇 가지 결정적인 단서로 충분했던 것처럼, 복잡하고 너무 많은 정보에서 특별한 핵심 '패턴'을 찾아낼 수 있으면, 순간 판단은 더 훌륭하게 발휘될 수 있습니다.

 

무의식적 편견은 사람이 환경과 경험에 영향을 받고 이것이 또 무의식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일어납니다. 이를 테면 자동차 세일즈맨이 여자와 흑인이 문을 열고 들어오면 높을 가격을 불러도 되는 애송이로 여깁니다. 사실 무의식적 편견에 대한 경험들은 우리 모두 충분할 만큼 많이 겪고 있지요. 



(말콤 글래드웰, 본인이 이 머리로 바꾸고 나서 당혹스러운 블링크의 오류를 경험했다고 합니다.

이 책이 그래서 쓰여지게 되었다네요.)

 


그러면, 편견의 오류를 줄이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즉 어떻게 하면 순간 판단을 잘 할 수 있을까요? 그리고 오류를 줄이면 어떤 새로운 가능성이 열리게 되는 걸까요? 이에 대해 저는 이렇게 정리해 봅니다. 

 

하나. 무의식이 경험과 환경의 영향을 받음으로써 미처 생각할 시간을 갖기도 전에 불쑥 튀어 나오는 즉각적인 연상과 무의식적 편견을 갖게 된다면, 역으 경험과 환경을 변화시킴으로써 첫 2초를 바꿀 수 있습니다. 무의식적 인종 편견 테스트를 매일 하던 한 학생의 경험처럼 말이죠. 이 학생은 아무리 애써도 그 점수를 변화시킬 수 없었는데 어느 날 흑인에 대한 긍정적인 연상 결과가 나오게 됩니다. 이유는 그 날 아침 올림픽 경기를 보면서 시간을 보냈기 때문임을 결국 깨닫게 됩니다. 이는 어떤 무의식적 연상과 편견에 맞서기 위해서는, 생각이나 말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 나아가 삶의 경험을 변화시킬 필요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합니다.

 

둘. 특정한 유형의 순간적 판단을 의식적으로 물리쳐야 할 때를 알아야 합니다. 이를 테면 세일즈 왕 골롬은 외모에서 받는 인상만큼은 걸려 내려고 노력합니다. 그 대신 진짜 의미 있는 정보들에 집중합니다. 이를 테면, 저 사람이 확신에 차 있는가 아니면 불안정한가, 아는 게 많은가 아니면 순박한가, 믿는 기질인가 아니면 의심하는 기질인가 같은 정보 말입니다.

 

셋. 싫어하는 등의 부정적인 감정이 종종 새롭고 다른 것을 대할 때 일어나기 쉽다는 것을 이해해야 합니다. 허먼 밀러의 에어론 체어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이 너무 이상하다, 싫다 에서 가장 아름다운 의자로 바꾼 것처럼 말이죠. 이는 나쁜 것과 다른 것의 차이를 짚어 내는 것입니다. 시장 조사에 오류가 발생하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입니다.

 

넷. 순간 판단에도 '여백'의 미는 필요합니다. 심리학자 키스 페인의 말처럼 "1초도 안 되는 짧은 순간에 결정을 내리는 상황이 되면 대부분 고정관념과 편견, 심지어 지지하거나 믿지 않는 관념의 인도를 받기 쉽기" 때문입니다.

 

다섯.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의 의식을 교육 시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축구를 해 보지 않은 사람들은 빠르게 판단하기도 힘들고, 본능을 통해 판단하는 것도 불가능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특정 종류의 훈련의 거듭 반복과 실제 경험의 결합이 일어나야 합니다. 순간 판단의 근본적인 변화를 원한다면 말이죠.

 


편견과 오류를 걷어내면 클래식 세계에서 일어난 것과 같은 획기적인 변화가 일어날 수 있습니다. 말콤씨 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가 궁극적으로 바라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이겠지요.


클래식 세계에서 순수한 판단을 방해하는 요소를 막는 아주 간단한 방법을 생각해냈습니다. 즉 오케스트라 단원을 뽑기 위한 오디션에서 시각의 편견을 물리치기 위해 장막 뒤에서 연주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이는 교향악단에 여자가 참여하는 놀라운 첫 기회를 열었습니다. 성별과 외모에 사로잡히지 않고 '연주의 진면목'을 들을 수 있었기 때문이죠. 여자 단원이 얼마나 파워풀하고 훌륭한 연주를 할 수 있는지 '들을 수' 있게 되었고 이는 클래식 세상의 사고를 바꾸게 되었습니다. 놀라운 것은 블링크가 신중하고 순수하게 작동되도록 아주 약간의 변화(장막 뒤에서 연주하기)를 줌으로써 가능했다는 것입니다!

 

 

(대화에서 특별한 포인트는 어디에 있을까 생각해 보니, '결정적인 감정의 전환, 그 바로 직전'에 있습니다.

이를 테면 순간적으로 화를 토하기 직전, 하지 말아야 할 말을 내뱉기 직전 같은 거죠.)

 


<블링크>를 읽는 내내 이런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나의 첫 2초를 방해하는 무의식적 연상은 무엇일까' '이혼 사유, 고소 당하는 의사, 장막 뒤의 연주처럼 결정적이고 특별한 포인트는 무엇일까?'

답하기 쉽지 않은 질문입니다. 앞으로도 계속 하게 될 질문이기도 합니다.

 

<티핑 포인트>을 읽으면서 말콤씨의 스토리텔링 솜씨에 반했었는데, <블링크>에서도 그 솜씨를 유감없이 발휘합니다. 책을 읽으면서 의미 있는 내적 질문도 갖게 되었고, 글을 읽는 재미도 누렸으니 두 마리 토끼를 잡았습니다.

 

 

블링크 -
말콤 글래드웰 지음, 이무열 옮김, 황상민 감수/21세기북스(북이십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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