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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벌과 게릴라>의 저자 게리 해멀의 최신작

 

 

로체스터대 심리학과 에드워드 데시(Edward Deci) 교수는 의미 심장한 연구 결과 하나를 내놓았다. 이 연구 결과는 동기부여, 보상에 대한 지금까지 뿌리 박혀 있던 당근과 채찍 이론에 다시 생각하게 만들었다. 인간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게 만든 것이다. 데시 교수는 그림을 좋아하는 아이들을 두 그룹으로 나누어 한 그룹의 아이에게는 그림을 많이 그리면 그에 대한 보상을 하고 다른 한 그룹의 아이에게는 보상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나서 다음에 그림을 그릴 때는 두 그룹 모두 그림을 그리는 것에 대해 보상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처음부터 보상을 받지 않았던 그룹의 아이들은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보상이 있든 없든 상관하지 않고 즐겁게 그림을 여러 장 그렸으나, 보상을 받은 경험을 한 그룹의 아이들은 보상을 해 주지 않게 되자 이전과도 휠씬 그림을 적게 그렸다. 이 실험 전에는 보상에 상관없이 즐겁게 여러 장의 그림을 그렸던 아이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이 실험은 외부의 보상이 오히려 이미 존재하고 있던 자발성을 해칠 수 있다는 근거를 내놓았다. 스스로 원해서 자발적으로 즐겁게 그림을 그렸던 욕구를 보상이라는 체험을 통해 오히려 꺾어 놓았던 것처럼, 스스로 원해서 자발적으로 일하려는 욕구 또한 보상으로 인해 조건부 의욕으로 만들 수 있음을 시사한 것이다.

 

자발적 목적, 자발적 동기, 자발적 의욕, 내적 욕구 등으로 이름 붙일 만한 인간의 이러한 내재적 속성은 앞으로도 경영학에서 심리학, 행동경제학 등과 맞물려 탐구 대상이 될 것 같다. 동기부여에 있어 이것이 최종적인 이상향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달리 말하면 전 직원을 혁신가로 만드는 것, 스스로 생각하는 자로 만드는 것, 스스로 행동하는 자로 만드는 것이 되지 않을까?

 

 

(image from: dongabiz.com)

 

 

이 책은 우리가 그다지 비판 없이 받아들였던 경영이론과 원칙들에 대해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게 한다. 사람도 달라졌고 기술도 달라졌고 기업의 생태들도 달라지고 있다. 그렇다면 다시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경영은 어떻게 달라져야 하며 기업이라는 조직의 모습은 어떻게 변화해야 할까? 저자가 제안하는 혁신의 모습은 이런 것이다.

 

"현대 경영은 작업의 규율을 만들었지만 조직의 적응력은 떨어졌다. 또한 전 세계 소비자의 구매력을 증가시켰지만, 동시에 그들을 봉건적이고 관료화된 조직의 노예로 만들었다. 그리고 현대 경영이 비즈니스를 매우 효율적으로 만드는 데 많은 도움을 주는 건 사실이지만, 좀 더 윤리적으로 만든다는 증거는 아직까지도 별로 없다. 바로 현대 경영의 실효성을 재검토해야 하는 시간이 온 것이다. 우리는 성가신 관리계층을 만들지 않으면서도 수천 명에 달하는 개인의 노력을 어떻게 조정해야 하는지 배워야 한다. 또 인간의 창의성을 억압하지 않으면서도 비용을 관리하는 방법과 통제와 자유가 상호 배타적이지 않은 조직을 만드는 방법도 배워야 한다." (책, 19쪽)

 

 

혁신에 대한 가장 첫 질문으로 저자는 인간답게 일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묻는다. 우리가 겉으로 그럴듯하게 이야기하지만 속으로는 다르게 생각하고 있던, 인간의 자발성과 창의성에 대한 기존의 믿음에 이의를 제기한다.

 

"만약 인류가 다른 동물들과 다른 점을 말해보라고 하면 회복력과 창의성을 가장 많이 언급할 것이다. 인간으로서 우리는 놀랍게도 유연하고 창의적이다. 그러나 문제는 대부분의 회사에서 우리가 그렇게 일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다시 말해 우리는 조직을 위해 인간답지 않게 일하고 있다." (책, 70~71쪽)

 

 

저자의 주장을 한 마디로 말하면, 인간이 소비자로서 그리고 직원으로서 자발적으로 선택하고 행동하는 조직 생태가 가능하도록 경영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저자가 대표적인 사례로 선택한 것은 홀푸드, 고어, 구글이다. 이 기업들이 대표적 사례로 대두된 것은 무엇보다도 그들이 인간에 대해 새로운 도전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고어는 현재 가장 혁신적이면서도 성공적인 성과를 이루어내고 있는 기업으로 손꼽힌다.

 

 

 

창업자인 빌 고어와 아내 지네비브 고어

고어사는 1958년 설립되었으며 설립 이후 단 한 번도 적자를 기록한 적이 없다.

2008년 고어 사 매출은 약 25억 달러에 달했으며,

매년 10% 이상의 매출 신장률을 기록하고 있다고 한다.

(from: sciencetimes.co.kr)

 

사실 고어는 초기 경영철학부터 인간에 대해 새로운 기준으로 시작했다. 설립자 빌 고어는 더글러스 맥그리거의 베스트셀러인 '기업의 인간적 측면'에서 깊은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이렇게 고어는 '인간이 일에서 의미를 찾아내고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는 동기가 있다'는 믿음을 바탕으로 조직 구조가 구축되었다. 고어에는 상사도 없고 직함도 없고 계층구조도 없다. 사적인 자리에서 격 없이 솔직하고 다양한 의견들이 상하 관계나 이익 관계에 상관없이 자유롭게 주고받아지는 것처럼, 그러한 의사소통과 일하는 분위기가 고어이기를 바랬던 것 같다.

 

고어에는 상사는 없지만 리더는 있고 보스는 없지만 후견인이 있다. 주어진 일은 없고 스스로 원하는 일에 참여한다. 프로젝트를 만들어 사람들이 모이면 자연히 리더가 되고 리더가 되어 달라는 요청을 여러 번 받은 사람은 리더로서 인정받게 된다. 상사는 회사에서 주어진 직위와 권한이지만 고어의 리더는 직원들에 의해 선택된다. 후견인 또한 원하면 바꿀 수 있고 팀 또한 사람을 받아들이거나 거부할 수 있다. 고어는 대부분의 기업 조직과 비교해 공동체 성격을 강하게 띠고 있다고 생각된다. 또 유기체 같은 느낌도 들었다.

 

 

고어 사 직원들이 독일에서 열린 한 전시회에 참석, 연료전지에 대한 의견을 나누고 있다.

(from: sciencetimes.co.kr)

 

 

지금까지와는 완전히 다른 혁신적인, 인간 중심적인 경영 모델을 만들고 싶다면, 고어나 구글 같은 회사를 만들고 싶다면 이 책이 도움이 될 것이다. 이 책은 '어떻게 개개인을 기업가처럼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하고 판단하고 결정하고 책임질 수 있도록 할 것인가, 그리고 그런 유연하고 조화로운 조직을 만들 수 있을까, 그러한 조직을 만들어내는 기본 원칙들은 무엇인가?' 에 대한 깊은 통찰과 제안들을 담고 있다. 이 제안들은 단순히 경영에서만 그 통찰력을 얻어낸 것이 아니라 민주주의, 신앙, 도시의 다양성 등을 통해 공동체라는 관점에서 접근하고 있다. 게리 해멀의 이러한 도전 자체가 경영 사상 분야에 있어 혁신적으로 보여진다.

 

저자는 섣불리 결론을 짓는다거나 이론을 완성하지 않는다. 그보다 기존의 생각에 도전하고 새로운 가치를 제안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기업가와 경영자들에게 단지 혁신을 하라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시대에 걸맞은 진정한 혁신이 어떤 것이 될지를 먼저 생각해 보도록 격려한다.

 

혁신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논하기 전에 혁신이 결과적으로 어떤 모습을 지향해야 하는 것인지를 먼저 고민해 볼 수 있도록 하는 책, 이것이 저자가 던지는 가장 의미 있는 질문이 아닐까 싶다.

 

소비자가 소비에 대해 보다 정신적 힘을 가지게 된 것처럼, 인터넷이 인간의 인식과 욕구에 대해 새로운 도전과 가치를 보여주는 것처럼, 이제 경영도 인간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야 하는 바로 그 전환기였으면 싶은 것이 내 개인적인 바램이기도 하다. 인간 세상의 다른 측면들이 정신적 변화를 거치고 있는 것처럼 기업과 조직 또한 '영적 기업으로 가는' 길을 접어 든 것 같다. 여러 선두 기업들로부터 영감과 자극을 받으며.

 

 

경영의 미래 -
게리 해멀, 빌 브린 지음, 권영설 외 옮김/세종서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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